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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 생애 요약 정리

후앤하 2022. 12. 24.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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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역사상 최고의 서예가로 손꼽히는 추사 김정희 선생님께서는 제주도 유배생활 당시 수많은 명작들을 남기셨다.

 

하지만 말년엔 세도정치 세력과의 갈등으로 인해 억울한 누명을 쓰고 끝내 귀양살이 도중 생을 마감하셨다. 만약 그때 다른 지역으로 유배를 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더 훌륭한 업적을 남기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다면 왜 하필 제주도로 유배를 가게 된 것일까? 그리고 그곳에서 무엇을 했을까? 또 얼마나 힘들었을까? 궁금해진다. 그럼 이쯤에서 추사 김정희 선생님의 일생에 대해 간략히 알아보자.

 

조선 후기 실학자이자 서화가였던 추사 김정희 선생님은 1840년 윤상도 옥사사건에 연루되어 함경도 북청으로 유배되었다. 그러다가 2년 뒤 경상도 포항 근처 장기로 옮겨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비교적 자유로운 생활을 했다고 한다. 물론 감시의 눈초리는 피할 수 없었지만 가족들과 함께 지낼 수 있었고 친구들과도 교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제자 이상적과는 편지를 주고받으며 학문 연구 및 예술 활동을 이어나갔다.

 

다만 정치적 상황이 급변하면서 불과 1년 만에 한양으로 압송되었고 곧바로 의금부 감옥에 갇히게 된다. 이곳에서 무려 9년간 모진 고문을 당하다가 55세 되던 해에야 겨우 풀려났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건강 상태는 최악이었다. 그리하여 이듬해 초봄 마침내 제주도로 유배길에 오르게 된다.

 

지금이야 비행기로 금방 갈 수 있지만 당시로선 머나먼 여정이었다. 꼬박 하루하고도 반나절 동안 배를 타고 가야 했으니 말이다. 도착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낯선 환경 탓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필요했고 외로움과 싸워야 했다.

 

뿐만 아니라 신분제도라는 높은 벽에 가로막혀 사회활동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부인 예안 이씨 덕분에 마음의 안정을 되찾고 작품 활동에 전념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녀는 남편 대신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며 내조에만 힘썼다고 한다. 훗날 아들 김상우가 아버지의 유작을 모아 『완당집』을 발간했는데 이것이 오늘날 전해지는 유일한 책이다.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8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67세 되던 해에 그토록 바라던 육지 땅을 밟게 된다. 허나 기쁨도 잠시뿐이었고 그해 12월 6일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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